'JP모건 투자은행가' 명재신 "사상최대 금융위기는 또다른 기회"
[스포츠서울닷컴ㅣ손현석기자] 통계청이 지난 15일 공식적으로 발표한 9월 신규 취업자 수가 11만명대로 추락, 3년 7개월 만의 최저치를 기록했다. 세계경제 불황의 어두운 그늘이 짙어진 탓이다. 이 때문에 취업을 앞둔 젊은이들은 더 치열한 '전쟁'을 치러야 하는 극한 상황으로 내몰리고 있다. 이들로선 '자신의 꿈을 향해 전진하라' '적성에 맞는 일을 해라'는 정언명제를 받아들이기 힘든 현실이다.
이러한 안타까운 현실을 극복하는 '롤 모델'로 떠오른 이가 있다. 세계 금융의 중심지인 월 스트리트에 입성, 투자은행가로 맹활약 중인 명재신(33)씨가 그 주인공. 이화여대를 졸업한 그는 IBM에 입사, 3년 만에 과장으로 승진하는 등 탄탄대로를 걷다 자신의 꿈을 쫓아 MBA(경영학 석사)에 도전장을 냈다. 그 꿈은 '개발도상국들이 세계시장에서 좀 더 경쟁력을 갖추는데 일조하는 것'이었다.
남들은 무모한 도전이라고 했지만 그는 1년여 준비 끝에 미국 MBA의 최고봉으로 알려진 워튼 스쿨에 당당히 합격했다. 이후 더듬더듬하는 영어 실력과 내세울 것 없는 경력의 핸디캡을 필사의 노력으로 극복해낸 뒤 JP모건 뉴욕 본사 투자은행가로 근무하게 됐다. 한마디로 ‘화려한 비상’이었던 셈. 그는 최근 이러한 성공의 과정을 '서른 살, 꿈에 미쳐라'(웅진지식하우스)라는 제목의 책에 담아 출간해 화제가 되기도 했다. 스포츠서울닷컴에선 이 땅의 젊은이들에게 꿈과 희망을 동시에 전해준 명씨와 서면으로 인터뷰를 진행해봤다.
1. 어떤 계기로 책을 내게 됐나?
2004년 4월 1일, 워튼스쿨에서 온 합격 이메일을 인터넷에 올리며 블로그라는 걸 쓰기 시작했다. 그때부터 일상을 기록하기 시작한 습관은 졸업 후 뉴욕 금융가에 진출해서도 계속됐고, 3년여 동안 200여 개의 글이 쌓였다. 이는 MBA 생활을 궁금해 하는 학생과 직장인들 사이에서 화제가 됐고, 예전 직장(IBM) 한 후배가 학교 선배이던 출판업자에게 추천해줘 책으로 만들어지게 됐다. 이 기회를 빌어 후배에게 감사의 말을 전하고 싶다.
2. '개발도상국들이 좀 더 경쟁력을 갖출 수 있도록 돕는 일을 하고 싶다'는 꿈은 언제부터 가지고 있었나?
1990년대 말, IT와 인터넷의 보급화가 가속되면서 세계의 많은 석학들과 국제기구들은 정보통신이 선진국과 후진국의 경제격차를 더 벌어지게 하고 있다는 연구를 앞다퉈 발표했다. 그 즈음, 모 일간지에서 소외된 아이들에게 인터넷을 가르치는 '키드넷'이란 자원봉사 프로그램을 알게돼 참가했다. 당시 난 서울 시내의 맹아학교를 맡게 되었는데, 거기서 정보통신이야말로 선진국과 후진국, 가진 자와 못 가진 자의 격차를 줄이는 강력한 수단이 될 것임을 깨달았다. 그 깨달음이 너무나 강렬했고, 이 ‘미션’이야말로 내 인생을 바쳐야 할 것이라고 생각했다.
3. IBM도 좋은 직장인데, 꿈을 위해 MBA에 도전하는 것 자체가 쉽지 않은 결정이었을 텐데…실패하고 좌절할 수도 있다는 생각은 안 했나?
세계은행(The World Bank Group)에서 개발도상국이 좀 더 경쟁력을 가질 수 있도록 돕는 일을 할 수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고는 잠도 못 잘 정도로 설레였다. 그러나 지원자격은 매우 까다로워 보였다. 조언을 구하고 싶어 세계은행의 인사부서에 10번 넘게 전화했다. 그리고 간신히 연결돼 자기 소개를 하려는 순간 그 직원은 단도직입적으로 MBA가 있냐고 물었고, 더 이상 말문을 열기 힘들었다.
그렇게 MBA에 대해 알아보고 나니 처한 현실을 바라보지 않을 수 없었다. 당시 적지 않은 연봉에 복리후생을 포기하고, 2년 동안 동기들이 승진할 때 나는 학교로 돌아갈 것을 생각하니…. 그러나 내겐 꿈이 너무나 컸던 것 같다. 날마다 마음 속에 활활 타오르는 불덩이를 안고 사는 기분이었노라고 하면 상상이 갈지 모르겠다.
젊은 날, 도전하지 않은 채 꿈을 접고 '그때 시도라도 해봤으면…'라고 후회하는 것이 더 할 일이 아니라고 생각했다.
4. MBA에 들어가기 위해선 GMAT, TOEFL, 에세이를 준비해야 한다고 들었다. 어떻게 준비를 했는가? 또 MBA를 준비하는 이들에게 해주고 싶은 얘기가 있다면?
TOEFL은 오랫동안 공부해온 방식이 주효했다. 대학시절, 방학 때 가능한 많은 영어 문장을 머릿속에 저장하기 위해 친한 친구와 팀을 짜 영어작문 책 한 권을 통째로 소리 내 외웠다. 그리고 모어학원에서 공짜로 배포하는 'AP 5분뉴스'라는 받아쓰기 프로그램을 4년간 계속했던 것이 듣기능력 향상에 지대한 도움을 줬다.
반면, GMAT은 직장 생활을 하면서 GMAT적 사고를 마스터하기가 쉽지 않았다. 언어능력, 수리능력, 글쓰기 부문 중 수리능력은 크게 어려움이 없었다. 언어능력을 위해 이곳 저곳 관련 학원도 꽤 오래 다녀봤지만, 결국 본인이 GMAT 언어능력 테스트가 무엇을 묻는 시험인지 스스로 깨우치고 한눈에 들어오도록 연습해야만 목표했던 점수가 나오는 것 같다. 에세이는 예전에 전혀 몰랐던 5명이 팀을 이뤄 서로의 글을 읽고 내용이 논리적으로 설득력 있는지 피드백을 주는 방식으로 준비했다. MBA를 지원하게 된 계기와 커리어에 대한 목표가 워낙 분명해 비교적 짧은 시간인 2개월 만에 마무리할 수 있었다.
(MBA를 준비하고자 하는 이들에게 하고 싶은 말은) MBA는 2년이라는 장기간의 시간 소요와 상당한 금전적 투자가 요구된다. 때문에 준비를 시작하기 전 충분한 사전조사를 통해 정말 이 길이 내가 가고자 하는 길인지 분명히 하라고 조언해주고 싶다.
5. 워튼 스쿨에서 낙제를 피하고 영어 수업 잘 따라가는 것이 목표였다고 들었다. 영어 수업의 어려움은 무엇이었고, 어떻게 이를 극복했는가?
이화여대 국제대학원 시절, 영어수업에서 살아남기 위해 한동안 고생했던 경험을 거쳤음에도 전세계의 두뇌들이 70명씩 모인 반에서 매 수업 내용을 모두 이해하고, 제때 손을 들어 날카로운 지적이나 질문을 던지는 것은 결코 쉽지 않았다.
처음부터 많은 욕심 내지 않았다. 매일 밤샘으로 다음날 수업 내용을 예습해 논쟁이 될만한 포인트들을 3~5개씩 집어냈다. 내가 할말을 상상하고 입으로 소리 내 연습했다. 어떤 날은 내가 찍은 포인트가 모두 빗나가는 날도 있었지만, 대부분은 크게 어긋나지는 않았다. 그 중에 한 두 개만 타이밍 맞춰 말하면 '오늘은 밥값 했다'는 기분이 들었다. 이렇게 1학년을 보내며 미국식 교육방식에 적응해갔다.
6. 어쨌든 힘든 과정을 거쳐 월 스트리트에 입성하게 됐다. 당신은 특히 인터뷰의 중요성을 강조하고 있는 것 같다. 요즘 한국에선 취업 준비생들이 한창 바쁘고 힘든 시기인데, 이들에게 인터뷰 비법에 대해 얘기해 달라.
개인적으로 '비법'이란 건 없다. 철저한 준비만이 자신이 원하는 직장에 합격할 수 있게 해준다고 생각한다. 공지사항에 명시된 자격요건이 있다면 그 부분에 대한 지식이나 기술을 보여줄 수 있어야 한다. 아울러 그 기업에 대한 기본 정보들은 웹사이트를 샅샅이 뒤지면 대략 감을 잡을 수 있으나, 주변에 그 회사에 다니는 친구나 선배들을 만나 이야기를 들어보면 객관적인 데이터들로 알 수 없는 사풍, 현재 중요한 이슈 등 고급정보들에 접근할 수 있다.
이 모든 준비과정은 본인이 얼마나 그 회사, 구체적으로는 그 업무에 준비된 인재인지를 보여주기 위함이다. 인터뷰 중에 이미 채용담당자가 '어? 이 사람은 완전히 우리 팀 사람인걸'이란 생각이 들게 만들면 승률이 아주 높아진다.
7. 책에 '꿈을 현실로 만들기 위한 7가지 습관'에 대해 나왔다. 그중 가장 중요한 습관은 무엇이라고 생각하나?
'메모와 실천'의 습관이다. (이미 책에도 썼듯이) 난 아직까진 아이폰이나 팜 파일럿 같은 디지털 기기보단 손바닥만한 수첩을 사용한다. 장·단기 인생의 목표 같은 거창한(?) 꿈들부터 은행가기, 서면 인터뷰 작성하기 등과 같은 오늘 해야 할 일들까지 낱낱이 모두 다 들었다. 자신의 생각을 직접 적으면 머릿속에서는 희미했던 생각들이 눈앞에 직접 보이기 때문에 또렷해 지는 경우가 많고, 바쁜 일상 속에 묻혀 중요하지만 급하지 않은 일들을 깜박하지 않아서 좋다.
특히 ‘메모와 실천’이 습관으로 자리잡지 않은 분들에겐 몸에 완전히 밸 때까지 '오늘의 할일'은 반드시 끝내고 잠자리에 드시기를 권한다. 일단 습관이 되면, 한두 가지는 내일로 넘어가더라도 본인 스스로 본인의 일정을 조정할 수 있게 된다.
8. 조금 민감한 질문일 수도 있겠다. 사상 초유의 금융사 도산 사태에 미국의 월 스트리트는 위기에 처하고 있다. 월가 금융회사 직원의 실직과 보너스 삭감 등이 이어지고 있는 상황이다. 현지 분위기는 어떻고, 언제까지 이런 상황이 계속될지 궁금해하는 이들이 많은데.
작년 여름까지만 해도 어마어마한 액수의 딜(deal)들이 쉼 없이 성사됐고, 그에 따라 상당한 액수의 보너스가 지급됐다. 좋은 시절이었다. 어느 업계나 마찬가지로 금융계도 부침을 겪는다. 단지, 돈과 직접적으로 관련돼 현 사회에서의 비중이 높아 파장이 크다. 이미 경기가 하강곡선을 그리기 시작한 올해 초까지만 하더라도 상상조차 할 수 없었던 100년 이상 역사의 대표적인 투자은행들이 문을 닫는 일이 일어났다. 답변을 해주는 이 시각에도 상업은행들조차 안전하지 않다며 다음 타자는 누구인지 몇몇 은행들의 이름이 거론되고 있는 상황이다. 아직 뉴욕에 남아있는 내 또래의 젊은 친구들은 "Sky is falling!" (하늘이 무너진다)며 도대체 시장이 어디로 가는 건지 날마다 근심에 빠져있으니 두말할 것도 없이 사기는 바닥이다.
그러나 이 초유의 금융위기는 또 다른 기회가 될 것이다. 이번 사태를 계기로 세계의 정부들은 금융 시스템을 재정비하기 시작했고, 금융기관들은 시장을 정상화하기 위해 그들 나름대로의 최선을 다하고 있다. 'Young professional'(청년 전문가)들에게도 이번 사건은 의미 있는 기회가 될 것이다. 경력에 도움이 된다니까, 막대한 경제적 보상 때문에 적성이나 꿈과 상관 없이 금융가에 몸담고 있다가 다시 일자리를 찾아야 하는 젊은 뱅커들은 이번 기회를 통해 진지하게 커리어 목표를 다시 생각할 것이다. 그리고 자신이 진정 원하는 길을 찾아가지 않을까. 반면, 모두가 최악이라고 말하는 이런 시장상황에서도 이전에 자신의 능력을 입증해왔던 뱅커들은 다른 금융기관에 자리를 잡을 것이다.
9. 이렇게 성공한 커리어우먼으로 성장하기까지 도움을 주신 분들은 누구인가?
컴퓨터에 아무런 사전 지식이 없는 날 뽑아 막중한 임무를 맡겨 가르치시고 믿어주신 IBM의 전 상사들(현 아던트 컨설팅 류목현 사장, IBM의 탁정욱 상무, 이상호 상무, 박종백 상무)은 두고두고 은혜를 갚아야 할 분들이다. 대학원에 다닐 때 외교통상부에서 인턴십을 하며 알게 된 김병주 박사는 MBA 지원 과정 중에 따끔한 질책도 아끼지 않아가시며 도와주셨다. 또 MBA 재학 시절, 우연히 인연이 닿게 된 국제경제 전문가 송경순 박사는 애정 어린 조언을 아끼지 않으시는 멘토가 돼주셨다. 마지막으로 지금까지도 나의 정신적 지주이신 부모님 덕분에 여기까지 왔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10. 마지막으로 한국에 있는 독자들에게 한마디 해달라.
'어떻게 사는 것이 잘 사는 것'이란 질문에 대한 정답은 없지만 본인에게 꿈이 있다면 어떻게 해야 그 꿈을 이룰 수 있는지 실행계획을 짜고 용기를 내어 반드시 시도해 보라고 얘기하고 싶다. 지금은 너무 늦지 않았나 생각될지 모르지만, 시간이 더 흘러 후회하고 있을 즈음에는 더 시도하기 어렵다. 결과가 좋건, 혹시 좋지 않다 하더라도 왜 안 되는지 인생의 귀중한 교훈을 배우게 될 것이고, 결국은 다시 일어설 것이며, 최선을 다했으니 적어도 후회하지는 않을 것이다. 당신의 도전에 '파이팅'을 보낸다.